1960년대 초부터 1979년까지 연평균 10%를 넘나드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의 찬사를 받은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은 그 화려한 성장 지표 뒤에 국민 대다수를 희생양으로 삼은 채 소수 기득권층만을 위한 잔혹한 착취 구조가 숨어있다. ‘한강의 기적’이라 포장된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은 잔존 일본인과 신생 친미파를 위한 기적이었다. 이는 기적이 아니라 다수 국민의 피와 땀을 짜내어 만들어낸 반민주적 성장이었고,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 구조적 불평등의 원죄가 되었다. 이 혜택이 몇 대가 지난 지금, 한국은 경제 불평등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역사에 무지한 무 지성 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승만은 왜 논하지 않느냐고? 그는 조선의 왕실과 연계해 다뤄야 해서 빼고 말한다. 감히 그 역사 반역자를 쉽게 입에 올리기는 싫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겉으로는 국가 발전을 위한 청사진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상은 소수 재벌 기업에 국가 자원을 헌납하는 매국적 정책이었다. 정부는 ‘효율성’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삼성, 현대, 럭키금성, 대우 등 특정 기업들에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 지원과 각종 특혜를 퍼부었다. 수출 실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금융 지원, 세제 혜택, 외화 배정 등의 인센티브를 독점적으로 제공했는데, 이는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귀족 기업을 양성한 것과 다름없다. 그 결과 1970년대 후반에는 상위 10대 재벌이 전체 제조업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가 완성되었다. 이들 재벌은 정부의 보호막 아래서 공정한 경쟁 없이 시장을 독점했고, 중소기업들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절망적 상황에 내몰렸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키운 재벌들이 오히려 그 국민을 경제적으로 억압하는 괴물로 자라난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 정책이라 할 수 있는가?
박정희 정권의 또 다른 죄악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방조한 것이다. 정부의 산업화 정책과 수도권 집중 개발은 토지 가격의 폭등을 초래했고, 이 과정에서 정보와 권력을 가진 소수만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강남 개발을 비롯한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은 일부 지주와 투기 세력에게 떼돈을 벌어다 주었지만, 일반 서민들에게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영원히 포기하게 만든 악몽이었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정부 관료들과 정치권력층이 사전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에 직접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개발 계획이나 정책 변화에 대한 내부 정보를 활용한 투기적 거래가 성행했고, 이로 인해 부동산 소유 여부에 따른 계층 분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1970년대 개발한 주공아파트에 고위 공직자가 살 수 있었던 특혜는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이 원초적 불법을 의식하지 못하는 죄의식 없던 때문이고 이는 일제 침략이 영토 침략이었다는 데서 비롯된다. 뺏기고 뺏고 사이에서 누군가는 제거됐고, 죽은 자의 것을 가로채는 부정한 짓이 산 자들 사이에서 자행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체득한 습성으로 집 한 채 없는 서민들이 평생 벌어도 집을 살 수 없는 절망적 현실을 만들어놓고서도, 정부는 이를 ‘성장의 부작용’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이 시기부터 한국 사회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극단적 불평등 구조가 뿌리내리게 되었다.
경제 성장의 진짜 주역은 밤낮없이 공장에서 피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이들을 성장의 동반자가 아닌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정부는 ‘수출 경쟁력 확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철저히 짓밟았다. 노동조합 활동은 용납되지 않았고, 임금 인상은 생산성 향상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으로 억제되었다. 노동자들은 경제 성장의 과실을 전혀 누리지 못한 채 오로지 재벌들의 배를 불리는 데만 이용당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이 지속해서 하락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고,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실질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이는 노동자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었으며, 성장의 혜택을 독점한 기득권층의 파렴치한 행태였다.
박정희 정권의 성장 정책은 도시와 공업 부문에만 집중되었고, 농촌 지역은 철저히 방치되었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투자는 턱없이 부족했고, 농민들은 도시 발전을 위한 희생양이 되었다. 많은 농촌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유입되어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지만, 그들이 받는 대우는 비인간적이었고 사회적 보호망도 전혀 없었다. 도농 간 소득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농촌은 점점 황폐해졌다. 정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로 이를 합리화했지만, 이는 결국 국토의 균형 발전을 포기하고 농민들의 생존권을 외면한 것에 불과했다. 농촌이 무너지고 농민들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관한 정부의 무책임은 용서받을 수 없다.
부의 편중이 심화하면서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한계소비성향이 낮은 상위 계층에 부가 집중되면서 경제 전체의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시장이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근시안적 성장 정책이 필연적으로 초래한 결과였다. 1970년대 후반 들어 성장률이 둔화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많은 특혜를 재벌에게 퍼주는 것으로 일관했다. 근본적인 분배 구조의 개선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득권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만 급급했다. 이는 국가 경제의 미래를 담보로 한 무책임한 정책이었다.
경제적 불평등은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졌고, 이는 계층 고착화를 가속했다. 고등교육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상황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만이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교육 기회를 박탈당했고, 이는 사회적 이동성을 원천 봉쇄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는 ‘교육 기회균등’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부유층 자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방치하고 봉쇄했다. 이는 헌법에 보장된 교육 받을 권리를 짓밟은 것이며, 국민의 능력과 잠재력을 낭비한 반사회적 정책이었다. 계층 구조가 굳어지면서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실개천 미꾸라지조차 성장하지 못하는 풍토로 바뀌었다.
박정희 정권의 정경유착, 재벌에게 특혜를 제공하고, 재벌은 정치권에 자금을 제공하는 부패한 거래 관계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면서 공정한 시장 경쟁은 사라지고 정치적 줄서기가 경제활동의 핵심이 되었다. 부동산 투기, 불공정 거래, 특혜 대출 등 각종 불법·탈법 행위가 정부의 묵인하에 자행되었다. 기득권층은 법과 원칙을 우롱하며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고, 이는 사회 전반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왔다. 정부가 앞장서서 부정부패를 조장한 결과,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박정희는 특정 지역에 산업화 정책을 집중해 과거 식민지 지배기의 앙금을 그대로 적용하는 지역감정 유발자였다. 이것은 전두환도 마찬가지였고 두 번의 군사 독재는 심각한 지역 불균형을 초래했다. 서울과 경기 지역, 그리고 일부 공업 도시에만 투자가 집중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영남과 호남 간의 격차가 극심해졌다. 특히 호남 지역은 의도적으로 소외되었으며, 이는 지역감정과 정치적 대립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지역 간 불균형은 단순한 경제적 격차를 넘어 국민 통합을 해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발전했다. 원래 호남은 동학에서 의병에서 참을 수 없는 항일 정신을 바로 뿜어대던 전투력 만랩의 지역이었다. 그러나 남북한 분단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포기하고 특정 지역만을 편애하는 차별 정책을 펼쳤으며, 이는 국민을 지역별로 차별하는 반헌법적 행태였다. 지역감정의 뿌리는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되었고, 이는 지금껏 한국 사회의 오랜 상처로 남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성장만이 선’이라는 가치관은 한국 사회를 야만 상태로 몰아넣었다. 죄 많은 정부가 더 큰 죄로 작은 죄를 덮느라 온 국민이 분배 정의, 사회적 약자 보호, 환경 보전 등 인간다운 삶을 위한 모든 가치를 버리고 경제 성장이라는 명목하에 국민은 그야말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The Dwarf)’의 탄환이 되어 짓밟혔다. 국민은 성장의 수치만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로 취급되었고, 삶의 질이나 행복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러한 성장지상주의는 일제의 착취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고, 기업과 공무원이 모두 동참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 확산은 상류층의 마약, 도박, 매춘 등의 더러운 짓거리를 음지의 사업으로 확산시켰다. 돈이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박한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이는 한국 사회의 정신적 토대를 파괴하고 공동체 의식을 해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불륜으로 태어난 2세, 3세, 4세가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은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 다수 국민을 희생시킨 반민주적이고 반인간적인 정책으로 국민을 배신하고 사회 정의를 짓밟은 용서받을 수 없는 역사적 잘못이었다. 재벌 특혜, 부동산 투기 조장, 노동자 탄압, 농촌 포기, 교육 불평등, 정경유착, 지역 차별 등 모든 면에서 국민을 저버린 정책이었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양극화, 계층 고착화, 지역갈등, 정치 불신 등의 문제들은 모두 이 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정한 국가 발전은 모든 국민이 함께 잘사는 것이어야 한다. 소수의 배만 불리고 다수를 희생시키는 성장은 성장이 아니라 착취다.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에 대한 미화와 찬양은 이제 그만해라.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이 많은 세상을 원한다. 그것은 작은 부자, 큰 부자 모두 마찬가지 속내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는데 모두가 부자이길 원하는 이재에 밝은 빠꼼이는 존재하기 힘들다. 가난한 주제에 부자를 위해 양심을 팔지 마라.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고 그 잘못을 인정할 때만이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