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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 the name—Corea or Korea—dignity comes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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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국민 vs 노무현의 시민...누구를 위한 주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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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6. 09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을 ‘국민주권정부’로 명명했다. 국민을 맨 앞에 내세운 것이다. 사실 이 대통령의 ‘국민 사랑’은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지금까지 존재해온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치의 본질은 국민 우선, 국민 주권이다. 그는 항상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그런데 이 국민이라는 말만큼 추상적인 단어도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수시로 언급하는 국민은 어떤 기준으로 말하는 것일까.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의 작동 방식과 층위는 크게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헌법상 주권자로서의 5천만 모든 국민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형식상 국민이다. 또한 사회 개혁과 정치 참여를 ‘함께’ 하는 실천적 국민의 기준도 포함돼 있다. 불공정과 기득권에 분노하고 합리적 상식을 따르는 국민을 지칭하기도 할 것이다. 또한 선거에서 자신에게 투표해줄 가능성이 있는 국민이 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이 언급하는 ‘국민’의 층위에는 그를 죽도록 미워하거나 경원시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행동하는 국민’이나 그를 지지하는 국민만을 주권자로 삼을 경우 침묵하는 나머지 다수는 국민이 아닌 것으로 치부될 위험성이 상존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모든 국민의 평등한 정치적 대표성을 침식할 수 있다.
 
그동안 누차 언급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 특정진영의 ‘대표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최고 통치자이자 국민통합의 주체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국민’이라는 단어가 ‘내 편’을 지칭하는 수사로 고착되면 그 반대편은 ‘국민’이 아니거나 심지어 ‘적’으로 매도될 수도 있다.
 
최근 진보진영 유튜브를 보면 ‘누가 더 찐 친명계였느냐’는 말을 농담처럼 하곤 한다. ‘이재명’이라는 말을 감히 꺼내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누구 누구는 공개석상에서 ‘감히’ 이재명을 언급하며 충성심을 보여주었다며 떠들어댄다. 그렇지 않고 같은 진보진영에 속해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수박’ 색깔을 내보였거나 이재명을 언급하는 데 주저했던 사람은 ‘성골 친명계’가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를 우스갯소리처럼 한다.
 
물론 농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명계가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도 이처럼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행보를 보여줄 경우 이 대통령의 개혁은 물 건너 갈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몰라도 친명계가 말하는 ‘국민’들속에는 ‘반대 진영’은 틈입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혁명에 성공한 사람이 그 혁명을 완성할 수는 없다. 혁명은 파괴의 언어이지만 그 혁명의 완결은 구축의 언어로 이뤄져야 한다. 혁명가는 늘 ‘적’을 필요로 하고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투쟁의 서사’를 반복 재생하는 데 익숙해 있다. 체제 구축과 통합보다 대중의 열정과 감정에 여전히 취해있기 십상이다. 마치 그것은 이성을 마비시키기 위한 진통제와도 같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과 그 열혈 지지층들이 든 축배는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파티는 끝났고 서늘한 평가와 검증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권력은 정점에 오른 순간부터 내려올 준비를 해야만 하는 유한성의 숙명에 처해 있다. 마키아 벨리는 군주론에서 “새로운 권력을 얻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고 일갈했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의 ‘국민’은 내 편만이 아니라 상대편에 더 치중하는 노력과 정성을 보여야 한다. 9일 발표된 집권 후 첫 국정 운영 기대감 여론조사(리얼미터)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78.4%)보다 이재명 대통령(58.2%)이 낮은 것은 당시와 비교할 때 우리 사회와 정치가 더 극심하게 분열되고 양극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 기준을 과거와 비교해볼 때 더 통합과 협치에 방점을 찍어야 함을 말해주는 열쇳말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그렇게 ‘통합’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떤 통치 방식을 택해야 할까. 이재명의 국민과 노무현의 깨어있는 시민의 차이점을 통해 그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재명이 말한 국민은 자신이 따라야 할 주권자이면서도 동시에 관리, 지도해야 할 통치의 대상이라는 인식도 느껴진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깨어있는 시민’은 집권자의 통치가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해결하고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비쳐진다. 이재명의 국민은 지지층 여부에 따라 ‘선택적 통치’를 하는 수단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노무현이 말한 깨어있는 시민은 권력자와 국민이 상호 소통하는 동지이자 동행자의 의미가 읽혀진다.
 
물론 야당도 국민이라는 말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쓰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이재명의 국민’이라는 말을 더욱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 뜻대로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그 국민들을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공학적 불순함이 들어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노무현은 국민이라는 말보다 시민이라는 단어를 더 즐겨 썼다. 노무현은 ‘시민’ 자체를 정치의 출발점으로 봤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수준만큼만 가능하다”는 말은, 권력이 시민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시민’은 부패하기 쉬운 권력에 대해 언제나 깨어있어야 하고 대통령도 깨어있는 시민들에 의해 견제를 받아야 함을 지적했다.
 
어떻게 보면 이재명의 국민과 노무현의 시민은 해석의 차이일 뿐 국민의 주권정치에 대한 지향점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한 후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계도’와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개혁과제를 밀어붙일 경우 이는 심대한 저항과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
 
노무현에게 시민은 ‘권력을 위임한 주체’이며 끊임없이 정치에 개입하고 감시하며 심지어 대통령의 말 한마디조차 따지려 드는 존재였다. 그에게 시민은 민주주의의 본질이자 출발점이었다. 대통령은 감히 이들을 통치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앞에 나를 ‘깨어있게 하라’고 청하는 존재였다.
 
반면 이재명의 국민은 그가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 ‘대변한다’고 말하는 존재다. 말로는 ‘국민의 뜻’이라 하지만 실제 정치 현실 속에서 그 국민은 지지율로 측정되고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화된 대중처럼 기능할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에서 느껴지는 ‘국민’은 어떤 이상적 정치 주체라기보다 정치적 명분을 부여하는 힘의 근거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노무현의 ‘깨어있는 시민’은 권력 위에 군림하는 감시자였다면 이재명의 ‘국민’은 권력에 의해 호출되는 대상에 가깝다. 혹자는 이 차이를 언어 유희나 말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굳이 국민주권정부라는 권력의 별칭을 내세웠기에 그가 말하는 ‘국민’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사회적 인식의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막연히 그들을 국민주권정부로 불러달라고 해서 국민의 주권이 명확히 실현되고 있다는 착각을 국민들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만 국민주권을 외칠 뿐 여전히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그것은 비상계엄의 ‘계몽’과 무엇이 다를까.
 
노무현은 ‘깨어있는 시민’을 강조했고, 그는 스스로를 ‘참여정부’라고 불렀다. 여기에는 분명한 인식의 전환이 담겨 있다. ‘국민주권’이 통치자의 시선에서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면 ‘참여’는 시민 스스로가 권력을 견제하고 정치에 개입하는 능동적 실천이다.
 
즉 국민주권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이념적 선언이자 관념적 인식이라면 국민참여는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국민의 능동적 개입과 실천양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를, 이재명 정권의 ‘국민참여정부’를 트집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향후 5년 동안 국민주권을 정권의 비전으로 내세웠기에 출발부터 그 지향점을 명확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과 기대에서 하는 사소한 참견쯤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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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영
5
‘국민’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제는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언어를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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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79
3
이 글에서 지적한 ‘혁명은 파괴의 언어이고, 완성은 구축의 언어’라는 표현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제는 통합의 정치가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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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상어
3
이재명의 '국민'이라는 말이 지지층만을 의미하는 수사로 고착된다면, 결국 국민이라는 단어는 분열의 언어가 될지도 모르죠.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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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4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국민’이 단지 ‘내 편’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다만 지금은 개혁의 동력을 모으기 위한 전략적 접근일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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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oon
3
국민을 내세운 통치가 진짜 국민을 위한 것이 되려면, 그 ‘국민’이 누구인지 명확해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통치의 언어가 아닌, 시민과의 동행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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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88
3
노무현의 ‘깨어있는 시민’이 권력을 견제하는 주체였다면, 이재명의 ‘국민’은 자칫 권력에 의해 소환되는 객체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인상 깊네요. 진정한 주권은 아래에서부터 솟아올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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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ity
3
‘국민주권’이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참여와 통합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말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려면, 반대편을 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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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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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초기의 열기와 지지율 상승에만 기대다 보면, 오히려 반대편 국민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네요. 권력을 유지하려면 통치자가 상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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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
3
‘국민주권정부’라는 이름만 외칠 게 아니라, 실제로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명확합니다. 말보다 실천이 중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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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road
2
이제 정권의 시작입니다. 좀 믿고 기다려 보는것도 우리의 역할일듯 합니다. 여러 우려도 이해되지만 지금은 지지해 주는것이 우리의 역할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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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mo
1
네 동의합니다. 지금은 좀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는게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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