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밤 21대 대선 후보자들간의 첫번째 TV토론회가 펼쳐졌다. 시청률이 지난 대선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고 한다. 이미 승부가 기울어 관심도가 떨어진 측면도 있고 공중파 방송이 아닌 유튜브 등 다른 플랫폼을 통해 시청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론의 평가는 대체로 비슷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상대의 공격에도 큰 실수 없이 안정감 있게 선방했다는 평가가 많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2위 후보임에도 시종일관 평범하고 무난함 일변도로 나가 ‘누가 1등 후보인지 모르겠다’는 평가가 많았다.
역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정치 및 방송 경력 10여년에다 ‘토론 고수’를 자처하던 터라 이재명 후보의 빈틈을 노리기에 바빴다. 4명 가운데 이번 TV토론회를 통해 단박에 뜬 사람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였다.
‘선배’ 김문수 후보의 악수를 거절해 ‘인성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탄핵 유발정당 후보의 사퇴 요구와 사회 불평등 이슈를 전 국민에게 호소한 것은 ‘무석 정당’ 후보임에도 남는 장사였다는 평가다.
사실 민주당 사람들이 보기에 김문수는 너무 준비가 안 돼 이재명을 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에 안도했을 것이다. 반면에 이준석이 꼬투리 잡기 식과 이슈 전체를 ‘극단화’해 이재명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데만 집중해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불만을 가질 법하다.
일견 맞는 평가이지만 그렇다고 어제 이 후보 또한 1위답게 토론회를 주도할 만한 카리스마와 이슈 장악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사실 대선의 TV토론회는 시청 후 유권자들이 후보를 정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 논 후보의 능력과 자질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성격이 강했다. TV토론회 한번에 대세가 바뀌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TV토론회가 중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세를 뒤집을 만한 중대한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각당 후보들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 또한 ‘실수만 안 하면 된다’는 전략이 TV토론회 내내 관통했던 것 같다. 이기고 있는 자의 여유와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과 ‘준비를 제대로 안 한 것 같은 인상을 줄 필요는 없는데 좀 안일하게 보인다’는 평가는 젼혀 다른 문제다.
지금 국민들은 지지율 50%대를 상회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를 대선 ‘후보’로 보는 게 아니다. 그를 이미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서 TV 앞에 앉는다. 이준석의 깐죽거리는 질문도 높은 정책 이해도로 가볍게 제압해 주기를 바라고, 그런 자신감과 능력이 인수위도 없는 차기 정권의 유능함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후보가 지지율 1위 기분을 만끽하며 대통령 행세를 하라는 게 아니다. 경쟁 후보들이 던지는 질문은 기본적으로 ‘극단적’인 예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든 1위의 철벽에 구멍이라도 낼 심산이다. 이 후보 또한 19대 대선후보 경선 당시 문재인 당시 후보와 TV토론회를 하면서 질문 태도와 사소한 문제를 일반화, 극단화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올바르지 못한 질문을 한 후보들이 1차적으로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이 후보 또한 시종일관 ‘너무 극단적으로 본다’며 빠져나가는 것은 성실하지 못한 답변 태도였다. 왜 극단적인지, 이준석이 100조 AI 투자액을 어떻게 쓸지 구체적으로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쓰임새’ 정도는 준비해서 소상하게 설명을 했어야 했다. 그래야 이준석이 극단적인 질문을 할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다.
무조건 이준석 지적을 극단적이라고 하면 상대와 똑같이 준비가 안 돼 정치공세로만 빠져나가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이는 이 후보가 자주 비판받는 포퓰리즘의 좋은 먹잇감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 후보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시절 행정력과 정책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번 TV토론회에서 그 특장점이 잘 나오지 않고 오히려 ‘극단적이다’는 말만 되풀이해 ‘준비를 제대로 안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또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미비한 점을 인정하고 보완해 나가겠다며 솔직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차별화 지점일 수 있다. 상대의 공격을 자초한다는 비판도 나오겠지만, 항상 ‘날이 선 것 같은’ 이 후보의 뾰족함을 상쇄시키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의 최대 덕목은 배려와 포용이지,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절대 질 수 없다며 아득바득 싸우려 드는 게 아니다.
그리고 캠프의 어떤 전문가가 낸 아이디어인지는 모르지만 ‘호텔 경제학’이라는 잘 들어보지도 못한 정책을 유세 기간 강조하고 다닌 것도 이준석의 도발 감행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많다. 물론 이 후보가 돈을 풀면 연쇄적인 소득·소비 증가를 촉발해 경제가 활성화 된다는 이른바 ‘승수효과’를 말하려 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굳이 그 예를 호텔의 예약 취소를 끌어다 돈의 흐름을 강조하려다 보니 일견 보기에도 실증적인 논리가 빈약해 보인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 호텔이 예약 취소로 손해본 그 ‘돈’은 화폐의 흐름에서 증발해 버리고 오로지 소비자들이 돈을 1차, 2차로 쓰고 있다는 것만 강조해 논란이 있는 것이다.
사실 어제 TV토론회가 이재명의 모든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어제 이재명 후보가 토론회에서 보여준 태도가 1위의 오만한 태도와 느슨한 대응,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이긴 듯이 긴장감과 절박함이 잘 보이지 않는 민주당의 ‘축제’ 분위기를 이 대표가 TV토론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보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상대 후보들이 지적하는 문제에 대해 “무조건 내가 옳다. 아니면 너희들이 어떻게 할 건데” 하는 태도만 시종일관 유지하다 보니 이재명의 유능한 행정력이 별로 돋보이지 않았다. 그런 오만한 대응은 ‘민주당이 너무 쉽게 가려는 것 아니냐’는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번 조기 대선은 윤석열이라는 전대미문의 ‘빌런’이 사적 감정으로 내지른 발작적 국정파탄 행위를 수습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이다. 이재명은 그 막중한 책임과 ‘수습권’을 국민들로부터 받기 일보직전이다. 이것은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경제가 쑥대밭이 돼 고통받는 국민들이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에게 준 준엄한 명령이다. 이번 대선을 쉽게 이길 수 있으니 토론회에서 대충 대답해도 된다며 허락한 ‘헐렁함의 특권’이 아니다.
국민들이 이재명에게 바라는 건 깐족거리는 이준석을 말싸움으로 코를 납작하게 만들라는 게 아니다. 윤석열이 깽판을 쳐놓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지 그 ‘진짜’ 대안을 이재명의 입을 통해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선거 전략 측면에서 볼 때도 “우리가 이기고 있지만, 지금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설파할 시점이다. 그래야 대세론이 탄탄해진다.
TV토론회에서 가장 절박해야 할 사람은 ‘진짜 대안’을 말하는 이재명이지, 얕은 지식으로 시종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려는 이준석이 아니다. 지금 민주당은 축배를 들 시점이 아니라 마지막 단말마의 스퍼트를 해야 할 때인 것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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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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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재명 후보가 1위라는 여유는 있었지만, 오히려 토론 내내 너무 방어적이고 준비가 부족해 보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유능함’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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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epark
4
이준석 후보가 이재명 후보의 정책을 집요하게 파고든 건 토론이 아니라 꼬투지 잡기만을 위한 수준 낮은 발언 뿐, 너무 극단적인 질문만 반복해 토론이 생산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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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3
이준석 후보가 얕은 지식으로 상대 실수만 노린다는 비판도 있지만, 오히려 이재명 후보가 더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설명했다면 토론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을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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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89
4
권영국 후보가 인상적인 모습. 의외의 토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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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선생
6
좋은 지적입니다. 아직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 대선은 이후 이어질 지리한 전쟁에 속한 하나의 전투.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선 꼭 이겨야 할 이 고지전에서 진정 '압승'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면 함부로 긴장 풀린 모습 보이지 마십시오,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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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do
4
솔직히 이재명 후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토론에선 다소 방어적인 느낌이 강했어요. 1위 후보로서 카리스마와 문제 해결 능력을 더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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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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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에게 기대하는 건 유능한 행정력과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에요. 상대의 무리한 공격도 차분하게 받아치면서 설득력 있는 답변을 더 많이 보여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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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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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캠프가 ‘실수만 안 하면 된다’는 전략을 세운 건 이해되지만, 오히려 너무 안일해 보였다는 지적이 공감됩니다. 긴장감이 부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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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min
3
TV 시청률이 반토막 난 건 이미 승부가 기울었다는 인식과 함께, 유튜브 등 새로운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한몫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TV토론의 영향력은 점점 더 줄어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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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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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국민들이 바라는 건 말싸움의 승자가 아니라 진짜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다음 토론회에선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비전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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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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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공감합니다. 이준석의 공격이 너무 과장된 것도 맞지만, 이재명 후보가 더 구체적으로 정책을 설명했다면 좋았을 것 같네요. 다음 토론회에선 조금 더 확실하게 대응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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