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러한 위기가 덮여 있습니다. 나는 이 땅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문화와 역사, 도덕과 장구한 질서의 가치를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심중한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누구에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을 향해 외친다 한들, 국민 대부분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성명의 본질과 내용, 그 당위성을 이미 알고 있기에 나의 성명은 군소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성명은 윤 대통령 파면의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헌재 재판관 여덟 분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헌재 재판관들에게 정신적 영향을 주기 위해 언설을 바라는 것은 영혼의 낭비이며, 바람직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닿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궁극적인 기준은 법입니다. 조선 왕조에서는 법의 자리에 도덕, 천명, 민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리는 즉각적인 구속력이 없습니다. 법은 즉각적인 구속력이 있으며, 시비를 가리는 데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합니다. 이러한 가시적 효력을 권력(파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의 권력은 도덕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역사의 죄를 짓게 됩니다.
지금 헌재 재판관 여덟 분은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국가를 망하게 할 수도, 흥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 헌재 재판관 여덟 분은 사람이 아니라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의 권능을 벗어난 초월적인 힘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이 신적인 재판관에게 좌도 없고, 우도 없고, 중도도 없습니다. 보수도 진보도 없으며, 어떠한 세속적 사감도 개입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어두운 곳이든 밝은 곳이든 모든 곳에 빛을 비추는 햇빛과 같은 존재여야 합니다.
윤석열은 내란의 수괴입니다. 이것은 저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며, 민의의 판결이며, 민주적 절차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태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도덕적 포용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악입니다. 윤석열이 취임한 이후 오늘까지 저지른 언행은 불순한 사적 욕망, 거짓과 위선, 막가파식 독주, 이성을 거부하는 주술적 비합리성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언행의 바탕에는 헌정 질서를 거부하는 위헌적 권위의식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은 단군 이래 가장 악랄한 형태로 등장한 지도자상을 지니고 있으며, 민본과 민주를 거부하는 폐역(悖逆)의 존재입니다.
헌재 재판관 단 한 분이라도 기각의 판단을 내린다면, 헌법을 최종적으로 수호해야 할 헌법재판관이 헌법을 부정하는 죄악을 인용하는 사태가 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근원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천명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윤석열 도당과 지지자들은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중앙지법에서 받아들이고 환호성을 지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헌재의 변론 과정은 완료되었습니다. 구속 취소 판결이 법률의 엄격한 해석에 따른 결정이라면, 그 엄격성이 똑같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윤석열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며, 내란 수괴의 활보로 인한 국민의 불안과 분노, 민심의 단결은 더욱 극렬해질 것입니다.
헌재 재판관들이 나의 소리를 듣지 마시고, 하늘의 소리를 들으소서. 요한복음의 말씀대로 육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영으로 판단하소서. 하루라도 빠를수록 이 민족에게 만만한 행복과 안녕이 앞당겨질 것입니다. 인용은 윤석열 한 사람에 대한 훈계에 지나지 않지만, 기각은 단군 이래 조선 민중 역사 전체에 죄악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의 파멸입니다. 민족은 하루라도 빨리 새 역사의 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헌 역사의 똥통에서 뒹굴 이유가 없습니다. 새로운 정치의 장을 만들고,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여 세계 시민들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피 끓는 호소가 남녀노소, 이념과 관계없이 민족의 양심을 깨우기를. 우리의 시인 한용운의 시 한 구절을 읽습니다.
"나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말하고 노는 때에 더 울게 됩니다. 님 있는 여러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여 좋은 말을 합니다마는, 나는 그들의 위로하는 말을 조소로 듣습니다. 그때는 울음을 삼켜서 눈물을 속으로, 창자를 향하여 흘립니다."
2025. 3. 10.
도올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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