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1 박영준 「열풍」, 곽하신 「혼선」, 손소희 「제모와 위신과」
동인지 『신작품』 창간.
빠블렌꼬(백석 역) 『행복』, 김영석 「사과나무」, 리갑기 「죽령」
민병군 「어러리벌」(장편 서사시), 홍순철 『영광의 그대들에게』, 김조규「조선의 형제들이 왔다」, 조령출 「강변에서」,
1953.1.20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취임.
1953.2 윤백남 『낙조의 노래』, 최정희 『녹새의 문』, 이무영 「초향」.
1953.2.6 미군, 평양시와 상원 일대 무차별 폭격.
1953.2.15 이승만, 중국본토 해안봉쇄요구 성명. 긴급통화조치.
1953.3 이무영 「임야행로」, 오영수 「노파와 소년과 닭」, 이봉구 「참새」, 황순원 「과부」, 최정희 「낙회」, 강신재 「그 모녀」.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노동위원회법 공포. 용초도 포로수용소 폭동.
한설야 「김두섭」, 김형고 「조가령 삭도」.
임창순 「수리산」, 리맥 「싸우는 어머니」, 조벽암 「기적소리」.
1953.3.5 소련 스탈린 사망. 말렌코프 수상에 취임.
1953.4 한설야 「력사」, 엄흥섭 「다시 넘는 고개」.
평론: 안함광 「김일성원수와 조선문학의 발전」.
곽하신 「죄와 벌」, 김광주 「불효지서」, 박용구 「부여복언의 단상」, 박영준 「삼형제」.
평론: 김종길 「전쟁과 시」, 김기석 「민족문화와 그 이상」.
1953.4.14 문화인 등록령 공포, 학술계·예술계 반발.
1953.5 황순원 「학」, 이무영 「속·암야행」, 박용구 「하늘은 오늘도 푸르러」.
평론: 곽종원 「6·25동란이후의 작단개관」.
한설야 『력사』 「땅크 214호」, 엄흥섭 「다시 넘는 고개」.
김순석 「우리는 말하리라」, 문순우 「전선에서 온 편지」.
평론: 추민 「조선영화의 새로운 성격」.
미군5기, 각지 저수지 폭격.
1953.5.6 문총, 문화인 등록시비에 대한 임시총회 개최, 수속절차를 간소화한다면 문화인 등록에 적극 협력한다는 결의.
1953.5.29 에베레스트 초등정(初登頂) 성공.
1953.6 손창섭 「사연기」, 안수길 「제3인간형」, 장용학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 이무영 「O형의 인간」, 최인욱 「외투」, 김송 「불사신」, 손소희 「닳아진 나사」.
1953.7 김광주 『석방인』, 염상섭 「해지는 보금자리 풍경」, 김동리 「풍우기」, 안수길 「쾌청」, 최태응 「3인」, 이주홍 「철조망」, 박용구 「청색안경」 「제물」.
평론: 조연현 「문학의 목표에 대한 일고」, 곽종원 「비평문학의 새로운 기능」.
국군 전체 전선에서 반격작전 전개.
민병대(향토방위) 공포.
1953.7.23 이집트 공화정(共和政) 선언.
1953.7.27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 성립.
1953.7.30 내각, 도시복구 및 건설계획실시를 보장할 데 대한 결정 채택.
1953.8 박영준 「통곡하는 어머니」, 강신재 「실처기」, 최인욱 『벌레먹는 장미』, 이봉구 「서울의 연인」, 유주현 「광상의장」, 최인욱 「연옥이」.
조병화 「소택지대(沼澤地帶)」.
한미상호방위조약 서울에서 가조인. 정부 서울로 돌아옴. 중립국 감시위. 판문점에서 군사정전위에서 활동개시. 미군사령부 용사 이전.
1953.8.3 이승엽일파(림화·설정식·리원조)간첩사건 공판 진행,6일 사형언도.
1953.8.7 문화보호법 공포. 평양방송, 남로당 박헌영·이강국·임화 등 12명 숙청 발표.
1953.8.8 쏘련, 북한원조 10억 예산 결정.
1953.8.13 조국전선 중앙위,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 항의문.
1953.9 황순원 『카인의 후예』, 오영수 「두 노우」, 염상섭 「가두점묘」, 이봉구「샘」, 최인욱 「인생의 그늘」, 박영준 「하나의 독선」, 곽학송 「안약」, 박용구 「쓰레기」.
1953.10 홍효민 『신라통일』, 최정희 『해당화 피는 언덕』, 이무영 『농군』, 안수길 「향수속의 적개심」, 박계주 「4인 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