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효종 대왕은 머리에 악질의 종기가 발생하여 그 고통이 자심한 중에 한재가 백성을 괴롭게 하는 것을 진심으로 우려하여 신하에게 명령하여 기우제를 지내도록 하였지마는 가믐은...
그 후에 청병이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인조가 송파 진두에서 태종에게 항서를 올리게 된 전말은 이미 기록한 바와 같거니와 일단 청병이 철퇴한 후 청국에서는 평안 병사 임경업과 이완...
인조는 공주로 몰려나가고 이괄이 쳐들어와서 새 임금을 올려세울 뿐 아니라 그의 군사 수만 명이 득실거리는 서슬에 여간 남아 있던 벼슬아치들은 이괄의 휘하에 들어가지 않을 수...
영변 부사로 내려간 이후로 휘하 군졸을 훈련하기에 극력 노력하였다. 서울을 떠날 때 새문 밖 연주문 기둥을 칼을 빼어 후리어 치며 명년 이때 다시 여기서 보자 하던 그 비장한...
더 길게 관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으로서 젊은 여자와 깊은 관련을 맺게 되면, 자연 그 사이에 넘어서 아니 될 선을 넘어서 이상한 관계가 생기기 쉽고...
명나라는 명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이 나라를 세운 이래 수백 년 그 문화의 무르녹음과 병력의 강성함이 미상불 대중원의 위력을 자랑할 만하였지마는 한편으로 보면 노쇠기(老衰期)에...
영창대군의 나이는 겨우 칠팔 세에 불과한 어린 왕자이니 그냥 우대해둔들 무슨 화근이 되랴마는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될 때에 가지가지의 모략으로 광해를 도와서 목적을 달하게 한...
자기 자신은 권문의 힘에 의지할 생각이 없다 할지라도 형조판서를 지낸 이수일 대감의 아들이란 이름이 출세의 큰 힘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랴.
그는 더욱 벼슬이 오르고 왕의 총애 하심을 받아 영광이 지극하였으나, 한갖 미천한 병사의 아들을 못잊어 끊임없이 탐문하였는데, 혹 소식에 들리기를, 길을 잃은 나그네가...
어장(御將) 금장(禁將) 훈장(訓將) 형판(刑判)등 샛별같고 맹호 같은 장수들을 지휘하여 넓은 사장을 달려가고 달려올 제, 아직 젊은 주국의 마음은 기쁨과 자족(自足)함에 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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