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택이라는 인물의 실체는 잘 알려지지 않는데 300여 년 전인 1700년대에 어떻게 기원전 2세기의 중국인 고사를 노래한 시조가 일제강점기에 편집된 것일까.
생몰년도 불확실한 평민의 청구영언 편찬이 일제강점기에 간행되었을까. 역사는 궁금하지 않은 자에게는 아무것도 답하지 않는다
<진본 靑丘永言 역주>는 희한하게도 서문이 한문이다. 한문으로 서문을 작성했다면 본래 한문으로 쓴 원본 시도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본서 1977년도 판의 세네카에는 鄭鉒東, 兪昌均으로 되어 있다. 해방 후에 나온 책으로 추정되는 <國語學史 1>에도 兪昌植으로 나오지만, e뮤지엄의 소개 글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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