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의 이 짧은 기사는 단순한 치안 기사가 아니라 식민 권력이 조선인을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봅니다. ‘배일단’이라는 표현 뒤에는 실제로 무장투쟁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일본은 그들을 불령선인이라는 낙인으로 지워버리려 했습니다. 기록의 언어부터 다시 읽어야 합니다.
( 0 / 500 )
big_brother
6
특히 “중국의 양해를 얻어 군대의 출동을 빌지 않으면”이라는 문장이 섬뜩합니다. 타국 영토에서 조선인 무장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겠다는 일본 총영사의 발언입니다. 식민지 지배가 국내 통치에 그치지 않고 만주와 중국까지 확장된 군사적 질서였음을 한 줄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0 / 500 )
안동댁
6
쉽게 지나칠 수 있는 1920년 7월 24일의 짧은 기사를 붙잡고 그 시대의 사람들과 권력, 언론과 역사의 관계를 되짚어 주신 글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배워온 역사도 누가 기록하고 어떤 언어로 설명했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된 기록을 오늘의 질문으로 되살려 주신 점이 참 뜻깊습니다.
( 0 / 500 )
pyo2000
6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법한 100년 전 신문기사 한 줄에서 당시의 권력과 언론, 항일세력의 흔적을 찾아내신 시선이 인상 깊습니다. 역사는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었는가에 따라 끊임없이 다시 쓰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0 / 500 )
Min_lee
4
‘불령’이라는 단어는 역사적으로 매우 무서운 낙인이었습니다. 독립을 요구하는 사람을 범죄자와 부랑자로 먼저 규정하면, 그들을 탄압하는 행위가 치안 유지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특정 집단을 먼저 위험한 존재로 규정한 뒤 그에 맞춰 사실을 해석하는 언론의 습관이 없는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합니다.
( 0 / 500 )
오광수
3
105인 사건에서 1920년 간도의 무장 항일세력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함께 보면, 3·1운동 이후의 ‘문화통치’를 단순히 식민지 지배가 부드러워진 시기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폭력만으로 억누르기 어려워진 민족적 저항을 언론과 제도, 여론의 영역에서 관리하려 했다는 측면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 0 / 500 )
moon82
3
역사를 단순히 교과서의 사건과 연도로 기억하지 않고,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언어로 서로를 바라보았는지까지 살펴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불령’이라는 단어 하나가 식민 권력이 사람을 어떻게 규정하고 기억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귀한 자료와 문제의식을 함께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 0 / 500 )
제임스K
2
역사는 거창한 독립선언문만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짧은 신문기사에도 숨어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순사로는 도저히 제어할 능력이 없다”는 일본 총영사의 말은 당시 항일세력이 결코 허구의 존재가 아니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잊어버린 것은 사건만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품었던 저항의 현실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0 / 500 )
minho7
1
100년 전 신문기사 한 줄을 이렇게 깊이 파고들어 당시의 시대상과 언론의 언어, 항일운동의 실체까지 연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나간 역사를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눈으로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특히 ‘불령’이라는 단어에 담긴 권력의 시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0 / 500 )
신고내용
신고내용을 선택해주세요
회원비난/비하/욕설글 및 댓글도배성 게시물저작권 침해/불법자료 유출허위사실유포개인정보 유출.사생활 침해무단광고/홍보음란물 및 도박 불법 광고물범죄행위 관련 글불법행위 관련 소개물품 판매 및 사기글악성코드 및 스파이웨어 유포기타 사유 및 운영진 판단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Sign in with Google
All information provided by us is free of charge and is for the public good.